재활이야기

[스크랩] 주민등록증만 남은 사나이

pelham 2015. 10. 23. 17:50

회원님들에게도박, 특히경마의폐해를 알려드리기 위해신동아1998년 10월호에서퍼왔습니다.


[체험수기]

13년간 경마에 미쳐 주민등록증만 남은 사나이

부정 경마 건전한 경마팬 노린다

정현상(구술정리)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원수는 죽이지 말고 경마장으로 보내라』

『경마는 인생 축소판』

『경마에 투자하는 것은 동해바다에 모래 넣기』

경마장을 드나드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을 「격언」이다. 특히나 나처럼 수억원을 경마장에서 잃고 주민등록증밖에 남지 않은 사람들은 더 절감할 것이다. 일상의 모든 일이 그렇듯 경마도 깊이 빠지지 않으면 건전레포츠로 손색이 없지만 지나치면 치명적이 된다는 걸 이 「격언」들은 알려주고 있다.

경마일(토,일)에는 아침 7시부터 사람들이 과천경마장으로 몰려든다. 일반인의 입장은 9시30분부터지만 열성 경마팬은 미리 도착해 경마예상지들을 보며 그날 우승마들을 점친다. 한국마사회 직원들이 입장객을 받기 시작하면 희안한 풍경이 벌어진다. 입구에서 약 200m 떨어져 있는 본관을 향해 사람들이 100m 달리기 하듯 뛰어가는 것이다. 본관 6층 일반인 관람대에 있는 소파를 차지하기 위해서다. 하루 종일 경마에 열중하려면 바깥 관람대나 시멘트 바닥에 앉아 관람하기가 불편하기 때문에 편안한 소파에 앉아 생중계되는 모니터를 보려는 것이다.

이른 아침 경마장을 들어서는 사람들은 모두 웃는다. 마치 그날의 행운이 자신에게 몰려온다는 약속이라도 받은양 걸음걸이도 여유롭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대부분은 전날 혹은 전 주의 경마에서 상당한 액수를 잃었을 것이다. 하루의 경마가 끝나고 돈을 잃은 경마팬들은 실의에 빠져 다시는 경마장에 발을 디디지 않겠노라고 다짐하지만 경마일이 다가오면 나처럼 이른 새벽부터 환한 얼굴로 다시 경마장을 찾게 된다.

누군가는 마약의 마(痲)자와 경마의 마(馬)자는 같은 마약성을 갖고 있다는 궤변을 늘어놓는다. 부정경마에 연루됐던 모백화점 사장은 『마약은 끊어도 경마는 못 끊겠더라』고 했던 적이 있다. 그렇지 않다고 말하지 못하는 건 경마에 깊이 중독되면 그 정신적 관성에서 빠져나오기 어렵다는 걸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나보다 더 한심한 처지에 있는 경마팬들이 많다는 것도 안다. 엄청난 규모의 사업을 날린 사람도 있고 목숨을 끊는 사람도 있다.

경마장에서 자주 마주친 한 젊은이는 어느날 체념어린 목소리로 『조금씩 베팅하면 맞는데 많이 걸면 꼭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평소 돈을 많이 갖고 오는 이로 소문이 났었는데 알고 보니 부잣집 3대독자라고 했다. 나에게 그 말을 한 뒤 어느날부터인가 그가 보이지 않았다. 며칠 뒤 그의 집 앞에서 자동차가 불에 탔고 그 차 안에 그가 죽어 있었다는 보도가 났다. 짚이는 데가 있었다. 정말 그가 사고로 죽은 게 아니라면 그는 아마도 경마장에서 돈을 잃고 실의에 빠져 자살했거나, 보험금을 타내려고 사고를 가장해 자살한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런 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몇 년 전에는 전직 경찰관이었던 경마팬이 경마에 빠져들었다가 『경마는 부정이다』라고 외치면서 신나를 뿌리고 분신한 사건도 있었다. 또 어떤 이는 경마에서 벗어나는 길은 죽음밖에 없다면서 예시장에서 목을 매달았다가 주변 사람들에 의해 살아난 적도 있다.

그런 이들이 또 나오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은 바로 그런 이들이 다시는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이해를 돕기 위해 그동안 드러난 부정경마 사례를 소개할 필요가 있을 듯하다. 경주 시작 30분 전 예시장에서 출전마들이 트랙을 한바퀴 도는 동안 기수 조교사 조교보 마필관리원 등이 사전 약속한 신호를 보내 우승예상마 등의 정보를 흘려온 사례가 여러 차례 드러냈다. 기수들은 토·일요일 경마가 시작되기 전인 금요일 밤부터 마사회 마사지역에 들어가 외부로부터 차단되기에 금요일 낮에 경마 브로커들을 만나 신호를 결정했다는 것.

금요일 밤 출전표가 확정되면 조교사와 기수들이 말의 상태를 파악해서 우승예상마를 의미하는 「간다」, 반대의 경우엔 「안간다」를 결정한다. 신호방법은 채찍을 길게 잡느냐 혹은 짧게 잡느냐, 안경 착용 여부, 안경의 색깔, 말을 타기 전 자세, 장화 색깔, 말에 가면 씌우는 방법 등 기상천외한 방법이 동원된다.

기수들이 보내온 정보가 적중해 많은 돈을 챙긴 브로커들은 기수에게 고급승용차 등으로 보상했다. 그러나 기수가 보내온 정보가 맞지 않았을 경우에는 폭력배와 연계된 브로커들에게 폭행당하거나 돈을 물어주기도 했다.

부정경마만 사라지면 사람들이 건전한 경마를 할 수 있다. 자기 수준에 맞게 돈을 가져가서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재충전 기회로 삼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부정경마에 빠져들게 되면 경마가 곧 직업이 된다. 그때가 되면 경마는 더 이상 레포츠가 아니어서 좀더 정확한 정보를 빼내려고 안달하게 된다.


85년 경마 시작

나는 1946년 경남 합천에서 태어났다. 시골에서 농사짓던 부모님의 도움으로 66년 어렵게 한양대 전자공학과에 입학했다. 당시는 대학 다니던 이가 흔치 않았던 때여서 방학 때 고향에 가면 면장이 악수까지 청하곤 했다. 사각모를 쓰고 도포 같은 교복을 입고 뽐내며 다니곤 했다. 학교 다닐 때는 열심히 공부했고, 졸업한 뒤에는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았다.

시골에 계신 노부모는 쉰이 넘은 자식이 아직도 걱정되는지 종종 양식을 보내주신다. 그것을 받을 때마다 밤에는 잠을 못 이룬다. 환갑이 다 돼 가는 내가 부모를 모시고 효도를 해도 시원치 않을 마당에 이렇게 경마 때문에 인생을 거꾸로 살고 있는 걸 생각하면 참으로 한심하다.

내가 경마에 손을 댄 것은 85년경. 당시 창원의 방위산업인 제일정밀 구매과에 다니고 있었는데 서울로 출장을 올 때면 주말을 끼고 왔다. 처음에는 개인적인 일도 하고 사람도 만나면서 특별한 일 없이 보냈는데 자주 올라오니까 매주 토·일요일을 어떻게 보낼지 답답한 노릇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뚝섬 경마장에 구경을 간 게 시작이었다.

누구나 그렇듯 처음에는 경마를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고 다른 사람에게 하는 법을 물어서 되는 대로 500원도 걸고 1000원도 걸었다. 그러면서 조금씩 경마에 재미를 붙여갔고 자신감도 생기면서 「베팅」 액수도 커졌다.

그 무렵 주식에도 투자하고 있었다. 특별히 주식에 밝았던 것은 아니지만 신문을 보면서 주식 시황을 분석하곤 했다. 공영토건이 부도가 났는데 생각해보니 부도가 나면 정부가 관리해주니까 특별히 위험할 것도 없겠다는 단순한 생각에 그 회사 주식을 사들였다. 액면가 500원인 그 회사 주식이 1주당 20원이었다. 당시 가장 싼 주식이어서 더 밑지지는 않겠지 하는 생각이었다. 87년 4월 직장을 그만두고 서울로 이사하면서 살던 집을 팔아 주식 76만주를 샀다.

그런데 주식이 폭등하면서 공영토건 주식이 5000원까지 오르는 것이었다. 그때 전부 팔았더니 10억원이 수중에 들어왔다. 그 돈으로 당시 2억원을 주고 서울 한양맨션아파트 한 채를 사고, 성업공사에서 경매에 부친 인천의 상가건물(5억원)을 하나 샀다. 남은 돈 3억원은 주식에 투자했다.


주식투자로 돈 벌어

88년 12월 주식 시장이 침체되기 시작했다. 실물경기가 나빠 정부에서 부양책을 계속 써도 주식 시장은 주저앉기만 했다. 그때 당시 이규성 재무부장관이 메가톤급 증시 부양책을 쓰겠다면서 주식을 많이 사라고 권유했다. 주식을 담보로 증권회사가 30%, 정부가 30%를 대출해주기도 했다. 자기돈 40%만 있으면 주식을 살 수 있었기에 대량으로 사는 이들이 많았다. 나는 3억원으로 10억원어치 주식을 샀다. 부양책에 힘입어 주식이 폭등하기 시작했다. 당장 다음날부터 매일 아파트 한 채값이 내 앞에 떨어지는 것이었다.

정부가 부양책을 쓴 지 사흘째 되던 날 오후였다. 점심을 먹고 증권사에 들어가니 주식은 계속 상종가를 치고 있는데 팔자 물량이 대량으로 쏟아져나와 있었다. 기자들도 주식 투자를 많이 했는데 오다 가다 만나 알게 된 이가 몇몇 있었다. 그들에게 물어보니 별다른 악재는 없다는 것이었다. 다만 청와대가 증권협회로부터 50억원의 정치자금을 받아 인위적인 부양책을 썼다는 야당의 논평이 있었다는 거였다.

다음날 10시에 이장관이 야당의 주장에 대해 해명하며 메가톤급 증시부양책은 쓰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주식이 폭락하기 시작했다. 빚 내서 샀던 주식들이 모두 깡통주가 되고 말았다. 그때 전국적으로 수만 명이 「깡통」을 찬 것으로 안다.

그때 나는 증권투자인협회 부회장을 맡게 됐다. 당시 회장은 오모씨로 주식 투자로 돈을 꽤 많이 번 사람이었다. 증시가 폭락하자 그는 사람들을 모아 여의도 증권거래소에 가서 데모를 하자고 했다. 그는 자비로 버스를 대절해 명동성모병원 옆에 대기시켜 놓고 명동의 증권사 객장을 돌며 사람들을 모았다. 그런데 증권거래소 경비원 수보다 적을 30여명이 모였다. 일단 그들을 태우고 영등포 지역 증권사 객장을 돌았다. 그렇게 해서 300 여 명을 모았다. 우리는 곧장 증권거래소로 들어가 그 안을 점거했다.

당시 평민당 총재였던 김대중 대통령은그때 우리 협회 임원들과 만나 『정부가 증권을 악용하고 있으니 증권투자인협회에서 건전하게 활동해달라』고 말했다. 우리는 김영삼 민주당 총재도 면담했다.

다음 날 사람들을 어떻게 모아 어디에서 데모할 것인가를 논의하고 있는데 정여사라는 이가 나서서 『데모하는 데 사람 동원하기도 어렵고 해봐야 에너지만 소모되니 그만두고 경마나 하러 가자』는 것이었다. 자신이 과천경마장에 가서 3만원 걸었더니 103만원을 주더라는 거였다. 정여사는 예쁘장하게 생긴데다 말솜씨도 좋아 많은 사람들이 그 말에 솔깃했다. 데모를 하려고 모인 수십명이 한꺼번에 경마장으로 갔다.

과천경마장은 뚝섬경마장과 달리 시설이 무척 좋았다. 골프장(현 경마공원) 등 주변 시설도 잘 갖춰져 있어 구경거리도 많았다. 그날은 우연히 돈을 벌어 주식으로 받은 스트레스를 조금 날려보낼 수 있었다. 그렇게해서 다시 경마장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했다.

하루에 100만∼200만원씩 경마장에 갖고 갔지만 잃는 날이 많았다. 경마 예상지를 보고 연구해도 잘 되지 않았다. 어느날 한 중년 사내가 내게 다가와 좋은 정보를 주겠다고 했다. 속칭 바람잡이였다. 자기가 기수나 조교사로부터 받은 정보가 있는데 자기를 따라 걸어보라는 거였다.


십진법 베팅 활용

자기가 어떤 기수를 아는데 그 기수가 이번에 간다는 사인을 보냈다며 몇 번에 걸라고 했다. 경주 직전 예시장에서 기수들이 말을 선보일 때 그는 그 기수가 채찍을 반쯤 잡은 것이 신호라고 했다. 나는 100만원어치를 사서 그 말에 걸었다. 그런데 그 말이 들어오지 않는 거였다. 그가 둘러댔지만 결국 내 책임이니 그에게 따질 것도 없었다.

그들은 관람대를 층층이 돌아다니며 비교적 초심자인 듯한 이들에게 다가가서 자신들의 「도둑사인」(기수와 큰손 사이에 오가는 신호를 훔치는 것)을 전하고 그 신호가 맞으면 얘기해준 이에게 돈을 요구하고, 맞지 않으면 대충 둘러대곤 한다. 그는 다음 번에는 제대로 베팅해서 잃은 돈까지 찾자며 나를 달랬다.

전자공학과 출신이어서 수에 밝은 나는 베팅에 십진법을 활용하기로 했다. 당시의 경주에는 10마리가 달렸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했다. 결국 10진법으로 따지면 맞힐 수 있는 확률은 45분의 1이다.

요즘엔 1주일에 이틀이 경주일이지만 당시에는 1주일에 사흘이 경주일이었다. 하루에 10경주, 한달에 120경주를 치렀다. 십진법을 활용한 뒤부터 맞히는 횟수가 늘어났다. 하루 한 경주를 맞히기도 하고 한 주에 한 경주를 맞히기도 했다.

십진법 「베팅」이라는 것도 요행수일 뿐이므로 정확한 것은 아니어서 점차 잃는 횟수가 많아졌고 경우의 수를 따져도 잘 맞지 않아 머리가 복잡해졌다. 주식에서 깡통을 찬 뒤여서 돈도 많지 않았다. 직장도 그만둔 뒤였고 어느덧 경마장에 가는 일이 직업처럼 돼버렸다.

당시 건설회사를 운영하던 친척이 서울 선릉 지역에 오피스텔을 분양했다. 그 친척은 내가 주식 투자로 돈을 날린 것을 알고 자신의 오피스텔 1층에 문방구 자리가 하나 있는데 운영해볼 의향이 있느냐고 물었다. 목이 좋아 남 주기 아까워서 그러는 것이니 전세 걱정하지 말고 해보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 제안을 받아들이기 싫었지만 아내가 자신이 운영할테니 받아들이라고 했다. 그렇게 해서 뜻밖에 문방구 사장이 됐다.

오피스텔에 출근하는 이들은 주로 아침에 문방구에 들렀다. 나는 아침 일찍 가서 문방구 문을 열었고, 아내는 조금 늦게 출근했다. 하루 종일 가게를 지키는 것은 고역이었다. 일요일에는 과천 경마장으로 갔지만 토요일에는 가게 때문에 가까운 송파 장외경마장으로 가서 경마를 했다. 그곳에서 같은 오피스텔에 입주해 있던 사채업자 문사장을 만났다.

문사장은 한 경주에 2000만∼3000만원씩 거는 「큰손(오데)」을 안다면서 같이 경마를 하자고 했다. 정보 경마를 하려면 돈이 많이 필요하지 않으냐니까 자기가 대주겠다는 것이었다. 문사장은 마침 자기 사무실에 돈이 없다면서 다른 사채업자인 송사장을 소개해줬다. 그래서 송사장으로부터 2억원까지 빌려 쓰게 됐다. 이자가 비쌌다. 그러나 그때 나는 이미 손을 뗄 수 없을 만큼 경마에 깊이 빠져 있었기 때문에 앞 뒤 가리지 못하고 돈을 얻어 썼다.

송사장의 전주는 동대문의 큰손인 김모씨였다. 그는 후에 200억원을 경마장에서 날려 유명해진 사람이다. 경마장에서 그가 움직이면 수십명의 장정이 함께 움직였다. 마사회는 도박성 고액 베팅을 막기 위해 마권 구입 상한선을 10만원으로 제한하고 있지만 「큰 손」들은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심부름꾼을 고용해 여러 곳의 발매소에서 마권을 수백장씩 사들인다. 장정들은 그에게 마권을 사다주고 보통 하루에 10만원씩 받는다. 또 김모씨가 정보 경마를 한다는 걸 들은 이들도 그를 따라다녔다.

큰손들은 처음에는 조교사나 기수들에게 인간적으로 접근한다. 그래서 향응을 제공하고 덜미를 잡은 다음에는 노골적으로 정보를 요구하는 것이다. 그때가 되면 조교사나 기수들이 빠져나갈 방법이 없어진다.

최근의 사례를 보자. 98년 7월 중순에는 기수 정금진과 마필관리원 배대환 등이 한국마사회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그들에게 돈을 주고 정보를 빼낸 이재오 등 경마꾼 6명도 같은 혐의로 구속됐다. 정씨와 배씨는 94년부터 최근까지 정보를 흘려주는 대가로 이씨 등으로부터 각각 1500여만원과 1000여만원 상당의 금품과 향응을 제공받은 혐의를 받았다.


경마장에서 7억원 잃어

송사장은 김모씨에게서 정보를 빼내 나에게 줬지만 그의 말대로 베팅을 해도 잘 맞지 않았다. 사실 아무리 기수와 브로커가 짰더라도 말이 제대로 움직여주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그래서 흔히 쓰는 말로 「마칠인삼(馬七人三)」이라 한다. 같은 말이라도 어떤 기수가 타느냐에 따라, 또 같은 기수라도 어떤 말을 타느냐에 따라 경주 성적이 엇갈리는데 기수보다는 말의 능력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송사장의 말이 적중할 경우에는 대가를 지불했다. 「간다」 「안 간다」는 정보의 정확도에 따라 천당과 지옥이 갈렸다. 결국 그렇게 돈을 잃기 시작하면서 92년 인천 상가까지 팔게 됐다. 그런데 중간에 사채업자들이 끼어 아주 헐값에 팔게 됐고 지금은 양도세도 내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동안 경마에 갖다 바친 돈만 해도 약 7억원. 그 돈을 잃고서야 나는 부정경마에서 손을 뗐다. 부정 경마로는 결코 성공하지 못한다는 지극히 단순한 교훈을 나는 그렇게 비싼 값을 주고 산 것이다.

아내는 성실하게 노력해서 돈 버는 걸 철칙으로 여기는 사람이다. 그런데 문방구라는 게 잔신경을 많이 써야 하고 돈은 얼마 벌지 못하는 힘든 일이어서 나는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내와 자주 말다툼을 하다가 결국 1년6개월만에 문방구를 팔아버렸다.

아내는 내가 경마하러 가는 걸 한동안 몰랐다. 경마장 갔다가 집으로 돌아갈 때는 항상 뭔가를 사들고 들어가는데다 그날 돈을 따든 잃든 얼마씩 돈을 내놓으면 의심을 하지 않았다. 더욱이 경마에 빠진 사람들이 대개 그렇듯 나는 다른 취미나 도박벽은 전혀 없다. 그렇게 아내 몰래 경마를 해온 이들이 상당히 많다. 그러나 결국 아내가 그 사실을 알게 됐다. 그렇다고 해도 특별한 불상사가 있었던 것은 아니어서 아내는 그다지 싫어하지 않았다.

아내 몰래 인천의 상가를 판 뒤 어느날 아내가 그쪽에 전화를 했던 모양이다. 밖에서 볼일을 보고 집에 들어가니 아내가 길길이 날뛰었다. 미안하긴 했지만 그대로 물러설 수 없었다. 동생 돈으로 주식에 투자해둔 3000만원 생각이 났다. 얼른 인천 상가를 팔아서 주식에 투자해뒀노라고 했다. 주식투자증서를 보여줄 수 있다며 오히려 당당한 자세를 취했다.

그날은 대충 넘어갔다. 그런데 동생의 돈으로 투자했던 주식마저 어느날 폭락했다. 참으로 절망스러웠다. 죽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그런 일을 겪고도 나는 토·일요일만 되면 경마장으로 향한다. 그것은 이제 내가 공기를 들이마시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것이다. 수중에 단돈 1000원만 있어도 나는 가지 않고 못 배긴다.

8월 중순부터 나는 평일에 실업자를 대상으로 한 공공근로를 하러 나간다. 일당은 2만8천원. 2주에 한번씩 33만원이 통장에 입금된다. 그러면 그 돈을 들고 다시 경마장으로 간다.

새로 취임한 오영우 한국마사회장은 강도 높은 처방으로 부정경마를 뿌리 뽑겠다고 공언했다. 그의 말대로 부정경마가 사라지면 경마장 사람들의 얼굴도 펴지리라고 본다.

토·일요일에 지하철 과천선을 타면 누가 경마하는 사람인지 금방 눈에 들어온다. 경마에 빠진 이들의 얼굴엔 웃음이 없다. 눈은 퀭하니 초점이 없고 사람을 정면으로 보지 못한다. 그들이 모두 가족의 손을 잡고, 여유있게 즐기기 위해 경마장을 찾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13년동안 경마를 하면서 여러 사람의 의견을 종합한 결과 내 나름의 부정경마 근절방안을 정리할 수 있었다. 지난 8월 8가지 내용으로 요약해 그것을 국민고충처리위원회에 보냈더니 한국마사회 쪽에서 답을 보내왔다.

그런데 답변 내용 가운데 마사회의 개혁 의지를 의심케 하는 것들이 많았다. 그렇게 미온적으로 대처해서 건전 경마를 정착시킬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만약 부정경마가 재연되면 그때 마사회장을 직무유기죄로 고발하려고 한다. 그게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부정경마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피해를 보는 상황을 더는 눈 뜨고 지켜볼 수 없기 때문이다.


부정경마 근절 방안 8 가지

▲유도기수를 유동적으로 14명 선발해 매 경주 예시장에서 발주 게이트까지는 유도기수가 말을 타고, 레이스 기승 기수는 기수 대기실에서 봉고차로 이동해 경주 시작 직전에 기승한다. 대부분 예시장에서, 혹은 발주게이트까지 이동하는 사이에 신호를 주고 받기 때문에 이 방법을 도입하면 사전에 신호를 차단할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마사회는 『기수는 자신이 기승할 경주마에 대해 몇 개월 또는 몇 주 전부터 조교과정을 통해 사전에 말의 각질이나 습성을 파악해야 말의 전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기승기수가 예시장에서부터 발주게이트까지 이동하는 것은 고객들이 기수와 말의 호흡상태 등을 보고 판단토록 하려는 것이다. 따라서 발주지점에서 추첨을 통해 기승기수를 결정하는 것은 고객들의 판단을 혼란시킬 수 있다』고 조금 다른 답변을 보내왔다.

보통 한 조교사가 40∼50마리의 말을 관리하며 조교사는 계약 기수들을 1, 2명 두고 있다. 그런데 조교사들의 판단에 따라 다른 조교사와 계약한 기수를 데려와 자기가 관리하는 경주마에 기승시키기도 한다. 그래도 그 말이 우승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기승할 기수가 몇 주 전부터 말의 습성을 파악해야 하고, 호흡을 맞춰야 된다는 것과 배치되지 않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마사회가 철칙으로 여기고 있는 위 사안에서 부정경마가 끊임없이 생겨나고 있다는 게 문제다.

▲경주마의 고삐 매는 법과 말 안장 위치 및 마필 장구를 통일시키고, 말 꼬리에 매는 빨간천 등 불필요한 부착물을 금지할 것.

마사회는 이에 대해 『경주마 착용장구는 사전 승인된 장구만 사용토록 돼있으며 이를 변경하거나 착용하지 않을 경우에는 재결위원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 말고삐 매는 법이나 안장의 위치는 기수의 체형, 기승 스타일에 따라 달라진다. 일부 출주마의 말꼬리에 부착된 빨간천은 그 말이 뒷발질이 심한 악벽마임을 나타낸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런 방법으로 신호가 많이 오갔다.

▲예시장에서 출주마에 가면을 사용하지 말고 발주지점에서 착용케 할 것. 가면 색깔은 통일시킬 것.

이에 대해 마사회는 『가면은 민감한 말들이 많은 사람이 몰려 있는 예시장에서 놀라지 않도록 하기 위해 사용한다. 색상은 볼거리를 제공하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말들이 민감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가면을 씌우지 않고도 충분히 예시장을 돌 수 있다. 경주마에 선발될 정도의 말이라면 악벽이 그렇게 심하지 않을 것이다. TV 사극에 엑스트라로 출연한 적이 몇 번 있는데 그때 조총 쏘는 소리가 요란한데도 악벽을 보이는 말들은 거의 없었다. 그리고 예시장에서 경주마의 가면 색깔은 반드시 통일해야 색깔로 주고 받는 사인을 막을 수 있다.

▲예시장에서 말을 모는 마필 관리인도 매 경주 추첨하게 하고, 이들의 복장 장갑 모자 등도 통일해야 한다.

▲한 기수를 집중적으로 많이 기승시키지 말 것.

이에 대해 마사회는 『마주는 자신의 소유마가 경주에 승리하도록 우수한 조교사와 위탁 관리 계약을 하고 있다. 조교사와 마주는 경험있고 기승능력이 뛰어난 기수를 기승기수로 선정하게 되고, 기수는 더 많은 상금을 타기 위해 기승 기회를 더 많이 갖고자 한다. 지나친 기승으로 기수가 체력적 한계를 느끼지 않도록 하고 경마의 경쟁원리를 보장하는 범위에서 8월8일부터 연속기승을 제한하고 있다』고 답했다.

▲조교시간대를 오전 9시로 변경해 일반인들이 말의 운동과정을 지켜볼 수 있게 할 것.

마사회는 『경주마의 조교 시간대는 말의 운동생리상 이른 아침(춘·추계:5시, 하계:4시30분, 동계: 5시30분)에 할 수밖에 없다. 이때 경마전문 예상지, 보도 관계자 및 일반고객에게도 개방돼 있고, 다수가 참관할 수 없는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PC통신 천리안에 일일조교정보를 공개하고 있다』고 답했다.

▲경마 경주에 관한 모든 자료를 신속히 공개할 것.

물론 마사회에서 PC통신 인터넷 경마예상지 언론 등에 출주마의 각종 성적, 마필능력조교 검사 현황, 출마등록 현황, 마필 개체별 성적, 기수 개인별 성적, 배당률, 산지·성별 경주능력, 일일 마필능력조교 현황 자료 등을 공개하고 있다. 그러나 조교시간대를 봐도 알 수 있듯 그런 정보들이 공정하게 제공되는 것 같지 않다. 마사회는 일반 고객들에게 더 친절하게 정보를 제공할 의무가 있다.

▲말의 능력과 제반조건을 감안,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경주를 편성할 것.

마사회는 상금 거리 부담중량(핸디캡) 등으로 나눠 경주체계를 관리하고 있다. 그런데 준비된 경주마가 현재 1350마리인데 말 숫자를 더 늘려야 박진감 넘치는 경주를 펼칠 수 있을 것 같다. 7∼14두가 출주하는 현재의 경주마 편성에서 3∼6두 정도만 능력과 기록, 제반 조건이 비슷하고 나머지 말들은 들놀이말(매주 출전말, 부진말, 30∼40전 뛴 말)들로 편성돼 조교사와 기수들이 부정경마를 하기 쉽다.


신변 위협 느끼며 토로

이러한 방안이 얼마나 받아들여질지 모르겠다. 다만 개선 가능성이 있는데도 관행을 고집하는 한 경마가 건전한 레포츠로 정착하는 길은 그만큼 더 멀어질 것이 분명하다.

마사회 내의 경마보안부는 직원 60여명이 경마 비리와 관련된 정보 수집과 비리 추적에 나서고 있다. 그들 중 계약직 44명은 전직 경찰관, 검찰 수사관, 안기부 정보담당직원 등 베테랑 수사요원들로 구성돼 있다. 그렇게 날고 기는 이들도 부정경마를 적발하는 건 쉽지 않은 모양이다. 그만큼 브로커들과의 연결고리가 감춰져 있기 때문이다.

최근 기수협회(회장 홍대유)가 독립한 것은 경마의 건전화를 위해 큰 진전이다. 부정이 거론될 때마다 그 중심에 기수가 있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기수협회가 독립하면서 종속 관계였던 기수와 조교사가 수평관계가 될 가능성이 커졌다. 기수들도 서로를 감시하면서 책임을 지는 기수책임제를 부르짖었다.

이를 계기로 건전한 경마 풍토가 조성되기를 기대한다. 나는 큰돈을 잃었지만 마음은 잃지 않았다. 그리고 내겐 사랑스러운 자식들과 따뜻한 아내가 있다. 2남1녀의 자식들은 다행히 제 엄마의 영향으로 잘 자랐다. 큰아들은 육사 4학년생으로 제 삶의 의지가 뚜렷하다. 그런 내가 신변에 위협을 느끼면서까지 과거를 토로한 사정을 이해해주기 바란다.




“부정경마 뿌리 뽑겠다”

한국 마사회 오영우회장 인터뷰

5·16이후 역대 마사회장은 한결같이 군출신에다 임원들 역시 전문인이 아닌 정치권 출신 등 외부인사가 많았다. 그렇다보니 외형은 커졌지만 경마부정 등 구조적 문제를 푸는 데는 한계를 보여왔다. 지난 3월 취임한 오영우(吳榮祐·57) 회장 역시 전 1군사령관 출신.

그러나 그는 강도 높은 개혁을 부르짖으며 마사회에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기수협회 독립, 경마 관계자들로부터 받은 양심보고 등은 경마 건전화를 위한 큰 진전으로 비친다.

한편 오회장은 마사회 내부의 정리해고 방안을 놓고 노조와 마찰을 빚고 있고, 최근 국무회의에서 확정한 경영혁신계획안에 반발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최근 마사회가 국무회의에서 확정된 경영혁신 계획과는 다른 세부 추진계획을 제출해 개혁에 역행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습니다.

『국무회의안은 마사회의 당기순익을 농어민자녀장학금, 축산발전기금 등 사회환원하는 비율을 50%(500억원)에서 80%(800억원)이상으로 확대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그 안 자체에 대해 반발한 것이 아니라 실무자로서 그 돈으로 지방경마장을 설립하면 더 큰 수익을 창출할 수 있고 사회환원액도 많아질 것이라고 본 것입니다. 정부가 경마장을 추가로 설립하지 않으면 그 인상분을 국가가 가져다 쓰는 게 당연하지만 설립할 경우를 가정해서 그런 의견을 낸 것일 뿐입니다. 그것이 개혁에 대한 반발로 내비친 것은 오해입니다』

―취임 이후 어떤 개혁조치들을 시행했는지요.

『기획예산위가 구조조정을 요구하기 이전인 6월부터 개혁안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크게는 조직개편, 인원·경상경비 절감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기능에 비해 인원이 많은 곳은 타부서와 통폐합시키고, 인원은 15%, 경상경비는 불요불급한 것 10%를 줄일 예정입니다. 마사회 수익금 중 단 한푼이라도 더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노조와는 마찰이 있겠지만 슬기롭게 해결해나가겠습니다』

―아직도 경마는 불건전한 도박의 하나로 인식돼 있습니다. 건전 경마의 이미지를 세우기 위한 파격적인 방안이 있는지요?

『경마는 사행성 때문에 부정적인 인식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본래의 성격인 건전한 레포츠로서 국민들이 즐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9월3일부터 경마상담실을 운영해 사행적 경마에 깊이 빠진 이들이 건전한 소일거리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 각종 경마 관련 시설과 제도도 지속적으로 보완, 개선해나가겠습니다』

―최근 들어 줄어들기는 했지만 부정경마는 완전히 뿌리 뽑히지 않은 듯합니다. 부정경마 근절방안을 갖고 계시는지요?

『부정경마의 뿌리를 뽑는 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의식전환입니다. 마필관리원들과 불량고객들의 연결고리, 그 부정 관행을 끊기 위해 제가 직접 개별 면담을 하고 양심보고를 받았습니다. 기수를 포함한 상당한 숫자가 양심보고를 해왔습니다. 수원지검 검사장을 만나서 제 뜻을 전했더니 양심보고를 한 사람들은 과거의 부정으로 문제가 불거질 때 최대한 사정을 참작해준다고 했습니다.

제가 부정관행 고리를 끊을 수 있다고 자신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90년 초반까지만 해도 마필관리자들의 보수가 낮아 부정 유혹을 쉽게 뿌리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그들은 한국사회의 상류층 수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승열패 개념에 따라 말을 잘 타는 기수는 상금을 많이 타가고 그렇지 못한 기수들은 적게 받게 되지만 기수 75명의 평균 급여는 500만원 정도 됩니다. 조교사 53명의 월평균이 600만원, 마필관리원 430명 정도가 250만원을 받습니다. 그들 스스로 과거의 부정고리를 차단하고 깨끗한 경마를 시행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입니다. 일대 전환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요즘의 입장객 추이는 어떠합니까.

『9월5일 토요일 입장인원이 모두 9만8079명(매출액 276억원), 9월6일은 11만779명(302억원)이었습니다. 최근 관람객 추이를 보면 연평균 20% 늘어나고 있지만 금년 매출액은 작년에 비해 8%, 금년목표에 비해 20% 정도 감소했습니다. IMF 시대이므로 고객들의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은 게 그 이유일 것 같습니다. 또 5, 6월 통계를 보니 5만∼10만원 사이의 고액베팅자들이 44%나 줄어들었습니다. 한달만에 그런 변화가 있었다는 것은 과거의 부정경마 고객들이 감소했다는 증거 아닐까요』

―마사회의 수익적립금은 어떻게 운용돼왔는지, 개선점은 무엇인지 간단하게 답변해주십시오.

『총수익금의 72%가 고객환급금, 19%(법인세 포함)가 세금으로 나갑니다. 97년 매출이 3조1110억원인데, 약 6천300억원을 국세·지방세로 납입했습니다. 대략 매출액의 4%가 순이익인데 이는 사회로 환원됩니다. 97년 순이익이 약 1300억원. 이 가운데 50%를 자체 적립금으로 적립해서 이중 80%는 축산발전기금으로 출연하고 나머지 20%는 문화관광부장관이 정하는 바에 따라 농어민자녀 장학사업 및 농어촌사회 복지증진사업을 위해 사용하고 있습니다. 나머지 50% 가운데 사업확장기금으로 30%, 이익준비금으로 20%를 씁니다. 현재까지 적립된 돈 중 사업에 투자할 수 있는 돈이 2400억원, 그 중에 새 관람대 건설 등 공사에 1300억원이 들어갑니다. 실제 쓸 수 있는 적립액은 1100억원. 세금이나 이익준비금 특별적립금으로 돌려야 할 부채성 적립액이 2000억원을 합해 대략 4500억원 정도 적립돼 있습니다. 그 외 운영기금에서 추가로 연간 40억원을 문화 체육 예술 사업 등에 사용합니다』


마사회 정치자금은?

―과거 마사회 경영진의 비리 의혹은 파악된 게 있습니까?

『전혀 없다고 봅니다. 과천경마장과 장외매장에서 평균 10만명이 베팅하는 액수가 곧바로 집계됩니다. 그것이 전산으로 정리되고 법대로 집행되고 있기 때문에 정말 숨길 수 없습니다. 1000만원이라도 법망을 피해 돈을 빼낼 수 없습니다. 과거에 수작업으로 마권을 팔았을 때는 어떤 장난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만 그때는 오히려 적자였기 때문에 그럴 가능성은 낮습니다』

―마사회 기금이 정치자금으로 전용됐다는 소문에 대해서는….

『오해를 많이 받는 것이 40억원의 사회문화체육기금인 것같습니다. 그 기금을 회장이 마음대로 쓰는 것으로 아는데 사실은 교수 등 외부 심의위원들의 견해를 충분히 들은 다음 합리적인 곳에 쓰고 있습니다』

―마사회가 명예퇴직금을 과다하게 산정해 여론의 질타를 받았습니다. 기획예산위가 당분간 명퇴를 유보하고 노사간 협의를 거쳐 명퇴규정을 고치도록 요청했는데 9월 초 현재 마사회의 명퇴금은 어떻게 산정되는지요? 그리고 실례로 가장 최근 명예퇴직자의 명퇴금은 얼마나 지급됐는지요?

『8월초 기획예산위원회는 기본급과 제 수당을 포함, 최소 6개월에서 최대 45개월분의 월급여로 지급하던 명예퇴직금을 공무원 명예퇴직수당 지급기준에 맞춰 기본급으로 조정하라고 했습니다. 현재 IMF 체제하의 어려운 국내 현실과 국민정서를 감안, 명예퇴직금 산정기준을 조정하는 방안을 노조와 협의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최근 5월 퇴직자 중 26년1개월을 근속하고 받은 명예퇴직금은 1억5800만원입니다』

―최근 부산 경남을 포함, 지방경마장 건립 요구가 일고 있는데요.

『마사회 세금 6300억원 중에 약 3000억원은 경기도로 들어갑니다. 그 중에 과천시로 약 670억원 들어가는데, 7만명의 과천시민에게 1인당 100만원씩 세금을 내주는 셈입니다. 지방 세수에 기여하는 바가 이처럼 크기 때문에 지방자치단체들이 경마장 건립을 희망하는 듯합니다. 미국의 경우 대공황 이후 루스벨트가 뉴딜정책을 추진하면서 각 주에 경마확산을 장려했습니다. 그것은 경마가 관련 산업에 미치는 효과가 크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현재 경마장 하나를 건립하려면 1500억원이 들어가는데, 그 돈으로 연인원 50만명의 고용창출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말 기수 진행요원 등 상근인력도 5000명이나 필요합니다. 이 어려운 시기에 무슨 경마장이냐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 외국의 사례로 봐서 그런 사업을 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면 경마장 설립을 건의했습니까?

『지난번 대통령께서 부산을 방문했을 때 부산 경남의 지자체가 경마장 설립을 건의했고 대통령도 긍정적인 대답을 하셨습니다. 제가 문화관광부에 건의해둔 것은 유보된 상태인데 부처 이관문제가 확정되면 승인이 날 것으로 보입니다』


마사회 농림부로 이관 예정

91년 정기국회에서 당시 마사회 주무부서였던 농림수산부와 체육부가 관할권 쟁탈전을 벌였고, 결국 92년 1월부터 체육부로 업무가 이관됐다. 그런데 최근 정부와 여야가 다시 마사회를 농림부로 이관하기로 합의했다. 마사회가 농림부로 이관될 경우 업무수행의 효율성 및 생산성 저하가 우려된다는 견해도 만만찮다.

―마사회의 농림부 이관에 대해 마사회측 입장은 어떠한지요?

『경마의 본질은 기수가 말을 타고 승부를 겨루는 경주라는 측면에서 스포츠이고, 경마를 통한 우수마 생산이라는 측면에서는 축산발전과 관계가 있습니다. 호주 태국 마카오 등은 체육 관장부처에서, 일본 프랑스 캐나다 등은 농림부에서 관장하고 있습니다. 우리회 관장부처는 정부가 시대적 상황에 맞게, 경마의 본질과 정책의 중점을 어느 분야에 더 두느냐에 따라 결정될 사항입니다』

―경마는 기수와 말, 관람객이 한데 어우러져 만들어지는 레저스포츠입니다. 말은 경마에서 수단에 불과한데 말 때문에 축산쪽에 비중을 두어 농림부 소관이라고 주장한다면 경륜은 산업자원부, 경정은 해양수산부가 관장해야 할 일이라는 견해가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경마와 경륜 경정의 관장부처 문제는 어느 일면만 갖고 결정할 게 아니라고 봅니다.』

―최근 기수협회가 독립했는데, 마주협회 등과의 사이에서 마사회의 위치는 어떻게 변모하게 되는지요?

『마사회는 이번 기수협회 독립을 적극 지원했습니다. 지원 배경은 첫째 기수 스스로 부정의 고리를 차단할 수 있는 자정 노력을 전제로 책임있는 경마를 할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둘째 기수의 경쟁력 강화에 그 목적이 있습니다. 최대한 자유로운 경쟁 체제 속에서 능력있는 기수는 고객으로부터 사랑받는 스타로 자리매김될 것이며, 능력이 부족한 기수는 전업을 유도해 경마의 질을 한 차원 높이는 계기로 삼아 고객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입니다』

―외국에는 마주협회가 메인센터로 자리잡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국내도 장기적으로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게 됩니까?

『경마 선진국에서 마주협회는 우리나라 시행체 역할인 경마시행에 관한 각종 룰과 제도를 총괄하고 경주마 혈통에 관한 업무를 관장하는 등 경마시행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외국에서는 경마가 왕족을 중심으로 한 마주들간의 내기에서부터 자연스럽게 발전하면서 마주단체가 주도적으로 경마제도를 정립해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경마가 도입된 이래 70여년간 시행체인 마사회가 경주마를 소유하고 경주계획을 수립해 경마를 시행하는 세계에서 유일한 제도를 택해왔습니다. 그러다 93년에야 선진국과 같은 마주제가 도입돼 마주협회가 설립됐습니다. 마주제의 역사가 일천하지만 마사회는 마주협회를 경마를 이끌어가는 양대기구로, 최고의 사교단체로 발전시킬 예정입니다』

―마사회와는 무관한 군 출신 인사가 회장으로 선임된 것에 대해 「낙하산 인사」라는 지적이 있었는데요.

『평생 군대생활하면서 조직관리한 게 제 이력입니다. 군에 비하면 훨씬 작은 조직입니다. 이 정도는 세밀히 관리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대선 직전 국민회의에 입당한 배경은 무엇입니까.

『정치에 참여해서 어떤 권력을 지향할 생각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국민회의에서 오영우라는 개인이 필요했던 것이 아니고 육군대장이 필요했던 것이 아니었던가 생각합니다. 맨 마지막에 필요하면 입당하겠다고 했는데 다른 대장들 영입에 실패해서 제가 입당했습니다. 저를 필요로 하는 곳에 가서 일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처음 김대통령을 뵈었습니다. 「남아일생 육군대장」이면 명예로서는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사회장 자리도 봉사하는 자리라는 생각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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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뇌졸중(중풍)을 이겨내는 사람들
글쓴이 : jacob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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